1972–1992년 남조선–중화인민공화국 비공식 무역 분석

📅 Дата публикации: 12.06.2023

🖋 Автор: 조선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남조선과 중화인민공화국은 지난 세기 중엽 조선전쟁의 휴전 이후로 수십 년에 걸쳐 동북아시아 지역에 존재하던 냉전적 대립구조 속에서 상호 간의 공식적인 접촉이 철저히 차단되고, 정치‧군사‧외교 전반에 걸쳐 적대적 관계를 지속하였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두 나라 사이에서는 일정한 경제적 련계가 유지되었으며, 특히 무역활동은 당국 사이의 직접적인 왕래가 불가능하였던 시기에도 지속된 유일한 실질적 교류 형태로서 기능하였다.

2020 년을 기준으로 하여 중화인민공화국과 남조선 사이의 무역 총액은 남조선의 대미‧대일 무역을 합한 것보다도 훨씬 큰 규모를 나타냈으며, 이는 쌍방의 경제관계가 단순한 상업적 차원을 넘어 전략적 협조관계로 심화되었음을 보여준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발전적 경제련계의 근원을 탐구하기 위하여, 공식적인 국교가 맺어지기 이전인 1972 년부터 1992 년 사이에 진행된 남조선과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의 무역관계에 대하여 시기별로 나누어 고찰하고, 각 단계의 특징적 경향과 역사적 의의를 분석하였다.

본 연구는 사회과학의 중간범위 이론들 가운데서도 역사적 제도주의의 분석 틀을 채택하였으며, 특히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과 경로전환(path transition)이라는 개념을 핵심적 분석 련장으로 삼았다. 경로의존성 이론은 일정 시점에 선택된 제도적 방향이 이후 지속적인 자기강화의 기제에 의하여 고착화될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으며, 경로전환의 관점에서는 혁명적 변혁이나 국제적 충격요인 등이 기존 경로를 근본적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제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본 연구는 남조선과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에 외교관계가 부재하였던 시기에도 불구하고 무역을 중심으로 한 비공식적 경제교류가 점차 확대되었고, 그러한 축적의 흐름이 오늘날의 전략적 협동관계로 이어졌다는 력사적 경로를 규명하였다. 특히 1980 년대 말엽부터 동북아시아에서 냉전구도가 와해되고 조선반도의 정치구조에 변화가 일어나는 가운데, 양국 관계는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되었으며 이는 무역관계의 확대와 제도화를 동반하는 중요한 전환점으로 작용하였다.

본 논문은 이러한 분석을 통하여 남조선과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의 경제교류가 갖는 력사적 의미를 조명하고, 동북아 국제관계 속에서 경제적 요인의 전략적 중요성을 깊이있게 인식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주요어: 남조선–중화인민공화국 관계, 비공식 무역, 경로의존, 경로전환, 간접교류, 전략적 경제련계 1.1 연구질문과 배경

1992 년에 남조선과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에 정식 외교관계가 수립되기 전, 두 국가는 장기간에 걸쳐 동북아시아 지역의 냉전정세 속에서 정치적 적대와 단절의 관계를 유지해왔다. 특히 1953 년 조선전쟁의 휴전 이후부터 1986 년 서울아시아경기대회에 이르는 기간 동안, 쌍방 간의 국가적 접촉은 거의 차단되었으며, 인적 왕래와 공식적인 교류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비록 1980 년대 중엽에 들어 민간 차원의 제한적 교류가 시작되기는 하였지만, 그것은 상징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적대적 구조 속에서 남조선과 중화인민공화국은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무역관계를 형성하고 발전시켜 나갔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쌍방은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를 가진 상태에서 직접적인 외교 통로가 부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경제적 접촉을 지속하였고, 이러한 련계는 훗날 전략적 협조관계로까지 확대되게 되었다.

1992 년 국교 수립 이후 남조선과 중화인민공화국은 각종 경제 및 외교 분야에서 비약적인 협력발전을 이룩하였으나, 그 과정 속에서 위기적 요소 또한 존재하였다. 이를테면 1998 년의 마늘분쟁, 2003 년의 령토사 왜곡문제(소위 동북공정), 2016 년의 사드(THAAD) 배치에 따른 갈등 등은 쌍방관계에 긴장을 조성하였다. 또한 최근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급격한 경제적 성장과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 격화 속에서 남조선의 외교적 자립성과 무역정책의 균형에 중대한 도전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복잡한 국제환경 속에서도 두 나라 사이의 무역관계는 관계유지의 핵심 축으로 기능하고 있다. 2020 년 중화인민공화국 상무부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양국간 무역규모는 2,852 억 미국달러에 달하며 이는 남조선의 대미, 대일 무역액을 합친 것보다도 크다. 수교 이래 남조선은 지속적으로 대중 무역흑자를 유지해 왔고, 이로써 다른 주요국과의 무역적자를 일정 부분 상쇄하였다. 그러나 2023 년에 들어서는 처음으로 대중 무역이 흑자에서 적자로 전환되는 변화가 발생하였으며, 이는 산업구조 변화, 수출품목 다변화, 전략적 의존도 감소 정책 등의 복합적 요인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조선과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의 쌍무무역은 여전히 가장 실질적이며 미래지향적인 협력영역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따라서 오늘의 경제관계가 어떠한 력사적

과정을 통해 구축되었는지를 해명하는 것은 현실적 의의뿐 아니라 학문적 가치 또한 크다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는 국교가 수립되기 이전 시기, 구체적으로는 1972 년부터 1992 년까지의 20 년 동안 진행된 남조선과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의 무역관계를 전면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남조선 외교문건자료와 중화인민공화국 관련 문헌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당시의 국제정치 구조 속에서 간접무역이 어떠한 경로를 통하여 형성되고 확대되었는지를 심층적으로 밝히고자 한다.

1.2 기존연구 검토

남조선과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의 무역관계에 관한 연구는 지금까지 대부분 국교 수립 이후의 시점에 집중되어왔다. 그 리유는 주로 해당 시기부터 공식적인 무역통계가 남조선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기관들에 의해 정기적으로 발표되었기 때문이며, 이전 시기의 자료는 제한적이거나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서만 접근 가능하였기 때문이다. 이로 하여 1980 년대 중엽, 특히 1988 년 서울올림픽 이전의 무역 실태에 대한 과학적 탐구는 현저히 미흡한 실정이다.

기존의 연구들은 다음과 같은 몇 갈래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남조선 경제의 발전과 구조변동에 대한 분석이다. 중화인민공화국 학계에서는 1979 년을 전후하여 ‘남조선’이라는 명칭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였으며, 당시는 일본 및 미국 학자들의 논문을 번역하거나 요약하는 방식으로 남조선 경제에 대한 인식을 확대하였다. 이후 남조선의 공업화, 무역구조, 기술도입, 자본축적 등에 관한 연구들이

제한적으로 이루어졌으나, 대부분 외부자료를 인용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이 시기의 무역 관련 수자들은 홍콩의 통관자료 등을 바탕으로 간접적으로 파악되었으며, 오늘날의 비교자료로서 일정한 가치를 지닌다.

둘째, 중화인민공화국 지방정부들과 남조선 사이의 지역적 경제교류에 대한 연구이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산동성은 남조선과의 무역에서 선제적으로 움직였으며, 1990 년대 초에는 위해, 청도 등 항구도시들과 남조선 항만을 잇는 정기 항로가 개설되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산동성을 중심으로 한 지역정부의 역할과 남조선과의 실무적 접촉에 대한 분석이 진행되었다. 최근에는 요녕성과 남조선 사이의 련계에 관한 사료가 공개되면서 관련 연구도 활성화되는 추세이다.

셋째, 수교 전후 양국이 체결한 무역 및 교류 관련 문건들의 정리 및 분석이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조선반도 정책문건집(1949–1994)』과 같은 사료집이 출판되었으며, 이에는 남조선 및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련계 과정에서 작성된 일부 공식 문건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수집된 문건은 대부분 1990 년대 초중반에 집중되어 있으며, 수량도 제한적인 데다가 정책내용 자체가 구체적인 현장상황을 전면적으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사료공개는 주변국과의 민감한 련계, 특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특수한 관계를 고려하여 비교적 소극적인 편이다. 반면, 남조선은 외교문서와 회의록을 비교적 개방적으로 제공하고 있어 해당 자료를 바탕으로 연구가 진전되고 있다.

넷째, 외교담당자들과 정치인들의 회상기 및 증언자료이다. 이들 자료는 공식문서로는 파악되지 않는 당대의 분위기와 의사결정 배경을 밝히는 데 유용한 보충근거로 기능한다.

중화인민공화국 측에서는 전 외교부장 전치천(钱其琛), 초대 남조선 주재 대사 장정연(张庭延), 대외련락부 간부 주량(朱良) 등이 당시의 사태에 대해 회고한 바 있으며, 남조선 측에서도 당시 대통령이었던 로태우, 전두환을 비롯하여 외무장관들과 대사들의 회고문이 다수 존재한다. 이러한 자료는 주관성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지만, 다른 사료와의 비교 분석을 통해 충분히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다섯째, 국제정치학적 관점에서 한중관계를 분석한 이론연구들이다. 남조선의 일부 학자들은 국제정치학의 구조이론을 적용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의 대조선반도 전략변화를 설명하였으며, 특히 “국가초월모델”, “체제전이모델” 등 다양한 이론틀을 도입하였다. 이러한 연구들은 정치와 외교의 거시구조를 조망하는 데 유효하지만, 실질적인 무역관계의 변천 과정에 대한 구체적 탐구는 부족하였다.

요컨대 지금까지의 연구들은 수교 이후의 무역관계에 편중되어 있었으며, 수교 이전, 특히 1970 년대와 1980 년대의 비공식적, 간접적 교역에 대한 체계적 분석은 미진하였다. 따라서 본 연구는 1972 년부터 1992 년까지 20 년 동안의 남조선–중화인민공화국 간 무역관계를 종합적으로 고찰하고, 해당 시기의 특징과 전환요인을 분석하여 오늘날 쌍무무역이 가지는 구조적 기반을 해명하고자 한다.

1.3 연구방법과 자료 본 연구는 국제정치 및 현대력사 영역에서의 이론과 방법론을 종합적으로 적용한 학제적 탐구로 설정되었다. 특히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 구도 속에서 남조선과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의 무역관계가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되었는지를 력사적 시계와 제도적 맥락 속에서 분석하고자 하였다.

첫째, 이론적 분석틀로서 본 연구는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 개념을 중심으로 설정하였다. 이 개념은 특정 시기의 제도적 선택이 자기강화적 기제를 통하여 일정한 경로를 고착화하며, 그 경로가 비효률적이라 하더라도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혁명, 전쟁, 체제개혁 등과 같은 중대한 외부충격은 기존의 경로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이를 경로전환(path transition)이라고 한다.

1949 년 건국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관계를 주요 전략적 축으로 삼아왔으며, 조선반도에 대한 영향력 행사 경로는 주로 북방을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1972 년 미중화해 및 1978 년 개혁개방의 실시에 따라 중화인민공화국의 대외전략은 일정한 수정 과정을 겪게 되었으며, 남조선과의 경제적 련계를 확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결국 1992 년 정식 수교가 성사됨으로써 중화인민공화국은 조선반도의 남북 두 주체와 동시에 외교관계를 수립하게 되었고, 이는 하나의 경로에서 복수 경로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둘째, 문헌분석 방법이 본 연구의 중심적 접근으로 설정되었다. 주된 사료로는 남조선 외교사료관에서 제공하는 외교문건, 국회 회의록, 국가기록원, 대통령문서보관소의 각종 문건들이 활용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측의 경우 국가적인 사료공개가 제한적이므로, 고위 당국자들의 회고문, 연보자료, 관영 간행물에 수록된 련관 글들을 보조 자료로 삼았다. 특히 『염황춘추』, 『당의 문헌』 등의 간행물에서 취득한 실무자 증언은 사실확인에 중요한 단서로 기능하였다.

셋째, 사례연구 방법론(case study approach)을 채택하여 시기별 무역관계를 독립적 분석단위로 설정하였다. 예컨대 1972 년부터 1979 년까지는 무역관계 형성의 초기 단계로

보고, 이 시기 간접교역의 성격과 경유지(홍콩, 일본 등)의 역할을 서술하였다. 1980 년대 중반까지는 확대기, 1988 년부터 수교 직전까지는 제도화 단계로 구분하여 각각의 국면에서 어떠한 정치적·경제적 요인이 작용하였는지를 해명하였다.

종합적으로 볼 때 본 연구는 경로의존성 이론을 중심으로 한 분석틀, 체계적인 사료조사, 시기별 사례연구 방법을 결합하여 수교 이전 20 년간의 남조선–중화인민공화국 무역관계에 대한 전면적이고 실증적인 고찰을 수행하고자 하였으며, 이를 통해 동북아지역 국제경제질서 형성과정에 대한 학문적 기여를 지향한다.

2.1 사회과학연구의 중간범위 이론

사회과학에서 연구방법론은 그 기본적 지향과 분석범위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뉘며, 특히 사회현상을 어떻게 해석하고 설명할 것인가에 대한 립장 차이에 따라 구체적인 접근법들이 구성된다. 그 가운데에서도 대표적으로 세 가지 방향이 존재한다.

첫째는 보편성과 일반성을 지향하는 립장으로서, 일정한 사회현상들을 자연과학과 같은 규칙성과 반복성을 가진 대상으로 보고, 그에 대한 보편적 법칙이나 일반이론을 정립하려는 시도이다. 이 립장은 인과관계의 명확한 규명을 통하여 다양한 사회적 현상들에 적용 가능한 예측 가능한 이론체계를 수립하고자 한다.

둘째는 사회현상에 내재된 의미와 맥락을 해석하는 데 초점을 두는 해석주의적 접근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사회는 객관적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특정 집단과 시공간 안에서 구성되는 상징적 의미에 의해 형성되며, 그러므로 과학적 일반화보다는 맥락적 이해가 더욱 중요시된다.

셋째는 앞의 두 극단적 립장을 절충하여, 완전한 보편이론 수립은 어렵지만 일정한 시간적·공간적 조건에서 일정한 설명력을 가지는 분석틀은 가능하다고 보는 접근법이다. 이른바 **중간범위이론(middle-range theory)**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 사회현상의 원인과 결과를 설명할 수 있으며, 다양한 경험적 사례를 통하여 그 타당성을 확보한다. 본 연구는 바로 이 세 번째 립장에 근거하여 남조선과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의 수교 이전 무역관계를 분석하고자 하였다.

력사적 제도주의는 이러한 중간수준의 이론 접근을 대표하는 분석틀로서, 사회제도와 정책, 국가의 행위방식은 특정한 력사적 시기와 맥락 속에서 형성되며, 그 제도는 이후 장기간 지속되며 새로운 사회현상에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 다시 말해, 현상의 발생은 일시적 우연이 아니라, 일정한 제도적 조건과 력사적 배경에 기반한 결과라는 것이다.

력사적 제도주의는 또한 제도를 고정된 구조물로 보지 않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와 지속의 이중성을 가진 동태적 존재로 간주한다. 제도의 형성과 발전은 사회세력 간의 력학관계, 국제정세, 기술변화 등의 복합적 요인에 따라 규정되며, 이로 하여 제도는 단순한 정책틀이 아니라 사회적 행위를 구조화하는 장치로 기능하게 된다.

Peter Hall 은 제도를 “행위주체들 간의 관계를 구조화하고 규범화하는 공식적 규칙, 절차, 관례”로 정의하였다. 이 정의는 제도가 단지 형식적 절차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행위자들의 선택 가능성을 제한하고 유도하는 역할을 수행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은 본 연구의 분석틀로서 제도라는 요소를 중심에 두는 력사적 제도주의가 왜 중간범위 분석에 적합한가를 설명해준다.

력사적 제도주의가 주목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바로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이다. 이는 일정 시점에 형성된 정책이나 제도가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경향을 지니며, 나중에 다른 경로가 존재하더라도 초기 선택이 계속적으로 강화되는 방향으로 구조화된다는 주장이다. 이와 같이 력사와 맥락을 중심으로 한 분석은 보편적 이론 정립이 아니라 사례의 특수성을 반영하는 중간수준 분석에 보다 적합하다.

요컨대, 본 연구는 수교 이전 시기의 무역관계를 단순한 사건들의 나열로 보지 않고, 제도와 정책이 형성된 배경, 변화의 계기, 그리고 이후 구조화되는 방향 등을 력사적 제도주의와 중간범위이론의 련계 속에서 규명함으로써, 오늘날 남조선–중화인민공화국 관계의 력사적 기반과 전략적 함의를 분석하고자 한다.

2.2 경로의존과 경로전환

력사적 제도주의의 분석틀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 개념이다. 이 개념은 사회적 현상들이 일정한 력사적 조건과 제도적 결정에 따라 특정한 방향으로 고착되며, 일단 한 번 선택된 경로는 그 자체의 내적 강화기제에 의해 오랜 시간 유지된다는 립장을 담고 있다.

2.2.1 경로의존성 (Path Dependence)

경로의존성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과거가 현재를 결정한다”는 차원을 넘어서, 과거의 우연적 선택이 제도와 정책의 장기적 진로를 구조화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해당 경로로부터 이탈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특성을 설명한다.

사회과학 이론에서는 이를 자기강화적 구조(self-reinforcing structure) 또는 **수익증대 메커니즘(increasing returns)**으로 서술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초기의 선택이 누적적 효과를 가져오고, 이후 다른 선택으로 이동하는 데 따르는 전환비용이 너무 커져 결과적으로 원래의 경로가 지속적으로 강화되며 재생산되는 구조가 형성된다.

예를 들면, 제도적으로 이미 형성된 무역구조나 정책기조는 그것을 지탱하는 여러 행위자들의 학습경험, 투자비용, 조직화된 이해관계, 정책관료집단의 안정화 등과 같은 요소들에 의해 쉽게 바뀌지 않으며, 이는 효률성이 떨어진다 해도 기존 경로를 계속 유지하는 데 작용하게 된다.

이러한 경로의존적 구조는 단순히 경제나 제도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고, 국가의 외교전략이나 대외정책과 같은 고차적 영역에서도 명확히 관찰될 수 있다. 특히 력사적 력량관계 속에서 특정한 동맹 또는 적대관계를 선택한 국가들은 해당 외교적 경로를 장기간 유지하며, 이와 관련된 제도와 정책은 자생적 변화보다는 외부적 충격에 의해서만 크게 수정되는 특성을 지닌다.

2.2.2 경로전환 (Path Transition)

그러나 모든 경로가 영구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일정 시점에서의 결정적 전환점(critical juncture), 즉 혁명, 체제붕괴, 대외개방, 령토분쟁, 국제전략의 대전환 등과 같은 거대한 변혁 요인이 작용하게 되면 기존의 경로가 해체되거나 새로운 경로로 전환될 수 있다. 이를 경로전환(path transition)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전환은 단순한 방향전환이 아니라, 사회구조, 제도환경, 정책목표, 외교전략 등 전반의 근본적 재조정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외부적 충격에 의하여 기존 제도의 정당성과 실효성이 약화되었을 때, 새로운 행위자들이 등장하여 기존 질서를 대체하는 새로운 선택지를 제시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제도 내부의 모순이 장기적으로 누적되어 왔을 경우 더욱 빠르게 나타나게 된다.

경로전환은 일종의 **단속적 변동(punctuated equilibrium)**으로서, 평상시에는 유지되던 제도나 정책이 일시에 대규모 변화로 이행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 전환은 내부적 개혁에 의해 유도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외부에서의 전략적 압력이나 국제정세의 급변, 력사적 사건(전쟁, 통일, 체제전환 등)에 의해 촉발된다.

따라서 경로의존과 경로전환은 고정된 이분법이 아니라 력사적 과정을 해명하는 연속적 틀로 작용하며,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력사-제도적 분석기제를 통해 남조선과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의 무역관계 변화 양상을 규명하고자 한다.

다음 절에서는 이러한 경로의존·경로전환 이론이 수교 이전 한중무역 사례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2.3 남조선 – 중화인민공화국 무역관계 연구에의 적용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경로의존성과 경로전환이라는 분석개념은 사회정책뿐 아니라 국제무역 및 외교관계 연구에서도 충분히 응용 가능하다. 특히 력사적 제도주의에 기초한 이러한 분석틀은 남조선과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의 비공식 무역관계 발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해명하는 데 있어 매우 유효한 방법론적 련장으로 작용할 수 있다.

1972 년부터 1992 년까지의 시기는 양국 사이에 정식 외교관계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로, 제도적 제약과 정치적 긴장 속에서도 일정한 형태의 경제적 접촉이 유지되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분석대상을 제공한다. 이 시기 쌍방은 직접적인 외교 채널 없이도 제 3 국(홍콩, 일본 등)을 통한 간접무역을 확대해나갔으며, 이는 냉전체제 하에서도 경제적 필요가 경로의존적 구조 속에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무역경로는 초기에는 우연적으로 형성되었을 수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음과 같은 자기강화적 기제를 통해 구조화되었다:

• 기술과 정보의 학습효과: 남조선 기업들은 중화인민공화국 관련 정보를 홍콩을 통해 수집하고 점차 시장진출 전략을 고도화하였다. • 정치적 긴장의 상대적 완화: 1980 년대 후반 동북아 지역의 력학관계 변화는 중화인민공화국과 남조선 사이의 적대적 구조를 점차 느슨하게 만들었으며, 무역확대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 지리적 근접성과 산업보완성: 남조선과 중화인민공화국은 물리적 거리뿐 아니라 산업구조 상에서도 상호 보완적 성격을 지녔으며, 이는 교역의 자연적 확대를 가능케 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곧 경로의존적 무역관계의 형성으로 이어졌고, 제도적 수립 이전에도 쌍방 간에 실질적 경제협력구도가 존재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1992 년 수교는 경로전환적 사건으로 기능하였다. 기존에는 제 3 국을 경유한 간접거래가 중심이었다면, 수교 이후에는 직접교역, 투자, 인력왕래 등 보다 제도화된

경제관계가 본격화되었다. 이는 기존의 경로가 유지되다가 일정 시점에서 완전히 다른 차원의 협력 구조로 넘어가는 전형적인 경로전환 사례로 분석될 수 있다.

경로의존–전환 분석틀을 적용할 경우, 다음과 같은 연구적 함의가 도출된다:

  1. 정치체제의 적대성에도 불구하고 무역은 제도적 지속성을 가진다. 즉 경제적 이해관계는 일정한 제약 조건 속에서도 작동 가능한 자기강화 기제를 형성한다.
  2. 제도적 전환은 외부적 사건에 의해 급격하게 유발될 수 있다. 예컨대 서울올림픽, 미중전략전환, 조선반도 정세 변화 등은 기존 무역구조의 질적 도약을 가능하게 한 촉매 역할을 하였다.
  3. 비공식적 교류가 공식화로 전이되는 과정은 력사적 연속성과 단절성을 동시에 내포한다. 본 연구는 바로 그 접점에 주목하였다.

결과적으로, 본 절에서는 경로의존성과 경로전환 이론이 남조선–중화인민공화국 간 무역관계 발전사를 설명하는 데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실증적으로 고찰하였으며, 이는 이후 각 시기의 구체적 사례 분석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다.

3.1 국제정치 구조와 동북아 질서의 변화

1970 년대에 들어와 세계적 범위에서의 정치력학은 새로운 전환기에 접어들게 되였다. 특히 미제국주의와 사회주의 나라들 사이의 대결구도는 그 복잡성과 긴장도를 심화시키면서 동북아시아 지역 또한 전례 없이 긴장된 상태를 지속하게 되였다. 조선반도를 둘러싼 정세 역시 이 대결구조의 핵심축으로 작용하였으며, 남조선과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의 직접적인 련계는 철저히 차단된 상태로 지속되였다.

그러나 1972 년에 벌어진 미국과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의 전략적 접근은 그 자체로 세계적 파장을 불러일으킨 사건이였다. 닉슨 대통령이 북경을 방문하고, 이에 따라 미중 공동성명이 발표된 것은 기존의 냉전구도를 일정 정도 재편성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였다. 당시까지는 중화인민공화국이 반제자주적 진영에서 미국을 주요한 적대세력으로 간주하고 있었으며, 미제는 또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 꾸바 등을 “공산권 적국"으로 분류하고 전방위적 봉쇄정책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은 미국 및 제국주의 진영과의 대결을 잠시 유보하고, 자체 발전을 위한 전략적 개방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바로 이 국면이 **개혁개방(1978 년)**의 서막이였으며, 국제무대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 점진적으로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경제협조를 확대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남조선과의 관계 역시 이 변화의 흐름 속에서 점차 새로운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동북아시아에서의 정세는 1980 년대에 들어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중화인민공화국, 소련 사이의 삼각관계는 내부적 균열을 노출하였고, 반면 남조선은 미국, 일본과의 군사 및 경제적 련계를 더욱 강화하면서 그 위치를 공고히 하였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은 남조선과의 경제적 련계를 비공식적으로 확대해나가기 시작하였다. 특히 홍콩을 경유한 제 3 국 무역은 남조선– 중화인민공화국 무역의 중요한 통로로 기능하였으며, 이는 표면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무역관계 속에서도 실질적 경제교류가 지속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시기의 국제정치 구조적 특징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미제국주의와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의 전략적 접근 → 중화인민공화국의 대외정책 전환과 개방적 태도 형성
  2. 조선반도를 둘러싼 이중적 대결구도 → 북방의 사회주의 진영과 남방의 제국주의 련합세력 간의 대립 고착화
  3. 동북아에서의 경제적 상호의존 관계의 서서한 확대 → 무역, 기술, 자본 흐름의 실질화 속에서 이데올로기적 장벽이 상대적 약화

이러한 조건들은 남조선과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에서 공식 외교관계가 부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간접적이고 비공식적인 교류의 가능성을 점진적으로 열어놓게 되였으며, 후일 수교 및 전면적 무역확대로 이어지는 력사적 전단계를 형성하였다.

3.2 무역통로와 간접교역의 구조

1970 년대부터 1990 년대 초까지의 시기는 남조선과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에 정식 외교관계가 존재하지 않던 시기였으며, 이로 하여 쌍방 간의 무역은 제도적, 정치적 제약 속에서 비공식적 통로를 통한 간접형태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 무역의 특징적 양상은 제 3 국을 경유한 우회적 구조로 설명된다.

가장 대표적인 중계무역지로는 홍콩이 있었다. 당시 홍콩은 중화인민공화국의 대외무역을 위한 전진기지로 기능하였으며, 또한 남조선 자본과 기업들이 중화인민공화국과 접촉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남조선의 기업들은 홍콩에 사무소를 설치하고, 이를 통해 중화인민공화국의 생산물자 및 원자재를 구매하거나 역으로 남조선산 공산품을 우회적으로 수출하였다.

이러한 간접교역 구조는 다음과 같은 특성을 지닌다:

  1. 상품의 원산지와 거래주체가 불명확하게 처리됨 → 남조선-중화인민공화국 사이의 직접거래가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거래명세서에는 제 3 국 기업이나 무역상이 등장하였으며, 양측 실체는 공식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2. 거래경로가 다단계화되고 비용이 상승됨 → 중간상과 중계무역회사가 개입함으로써 유통과정이 복잡해지고 수익구조에도 영향을 미쳤다.
  3. 정세 변화에 따라 거래의 지속성과 신뢰성이 일정하게 위협받음 → 국제정세 또는 제재정책의 변화에 따라 무역경로가 갑자기 차단되거나 변경되는 경우가 잦았다.

특히, 남조선의 대중화인민공화국 수출은 대부분 일본, 홍콩, 싱가포르 등을 거쳐 이루어졌으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통계상의 왜곡은 실질적인 무역량 분석을 어렵게 만들었다. 중화인민공화국도 공식적으로는 남조선을 ‘교역상대국’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출입 자료는 제 3 국 기준으로 작성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비공식적 구조 속에서도 쌍방의 무역량은 꾸준히 증가하였으며, 이는 다음과 같은 요인에 기인하였다:

• 남조선 기업의 원자재 확보 욕구: 중화인민공화국의 값싼 원료와 인력은 남조선 산업계에 매력적인 공급원이였다.

• 중화인민공화국의 외화 확보 필요: 개방 초기 단계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은 무역을 통해 외환을 축적하고, 남조선 시장은 실질적으로 중요한 구매처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 정세적 경직성 속의 경제적 실리 추구: 비록 정치외교적으로는 적대 구조였지만, 경제적 리익은 그 경계를 넘어서 작동하고 있었다.

요컨대, 1970~80 년대의 남조선–중화인민공화국 무역은 제도적 장벽을 우회하여 형성된 간접적 경제교류 구조였으며, 이는 이후 수교 이후의 정식 무역으로 이어지는 력사적 기반을 형성하였다. 당시의 무역통로와 방식은 그 자체로 냉전체제 속에서도 경제가 어떻게 현실의 요구에 따라 력동적으로 움직이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실례로 평가된다.

3.3 시기 구분과 단계별 특징 분석

1972 년부터 1992 년에 이르는 20 년간의 남조선–중화인민공화국 무역관계는 하나의 력사적 흐름으로서 연속성을 가지면서도, 정치·외교·경제적 조건의 변화에 따라 몇 개의 시기로 나누어 구체적인 특성과 전환 양상을 분석할 수 있다. 본 절에서는 해당 기간을 세 단계로 구분하고, 각 시기의 구조적 특징을 분석하고자 한다.

(1) 제 1 단계: 무역관계의 개시기 (1972 – 1978)

이 시기는 미중공동성명과 중화인민공화국의 대외개방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로서, 남조선과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의 초기적 교류 시도가 민간 및 제 3 국 상업통로를 통하여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 무역 규모는 소규모에 그쳤으며, 대부분 비공식 경로를 통해 진행되었다.

• 신뢰 기반이 불안정하였고, 거래 상대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위험성이 높은 단계였다. • 교역 품목은 주로 기초 공산품과 생필품, 원자재 등 낮은 수준의 상업상품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이 시기는 구조적으로 불안정했지만, 이후 관계 확대를 위한 기반적 실험기로 기능하였다.

(2) 제 2 단계: 관계확대 및 구조화 단계 (1979 – 1987)

중화인민공화국이 개혁개방 정책을 본격화하면서, 남조선과의 무역은 양적 확대와 더불어 일정한 패턴과 구조를 갖추게 된다. 이 시기에는 다음과 같은 변화가 뚜렷하였다.

• 홍콩, 싱가포르 등 제 3 국 통로를 통한 간접교역이 본격화되었고, 다국적 기업 및 무역상사들이 적극 개입하였다. • 교역 품목이 기초산업재에서 고부가가치 소비재로 다양화되었으며, 일부 산업부문에서는 상호보완적 관계가 형성되었다. • 무역신뢰와 거래안정성이 상승하였으며, 반복거래 및 장기계약 등의 형태가 등장하였다.

이 단계는 남조선–중화인민공화국 무역관계가 제도 없이도 준국교 수준의 교류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기로 평가된다.

(3) 제 3 단계: 제도화 이전의 전환기 (1988 – 1992)

1988 년 서울올림픽의 개최는 중화인민공화국이 남조선과의 관계를 공개적 수준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시기는 외교정상화를 위한 사전 단계로서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녔다.

• 양국의 정치 지도자 및 고위층 사이에 간접적 접촉이 시도되었으며, 일부 경제사절단의 상호 방문이 이루어졌다. • 정치외교적 조건이 완화됨에 따라, 무역량도 급격히 증가하였다.

• 기존의 제 3 국 중심 교역방식에서 점차 직접적 접촉과 정보교류가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는 수교 직전의 전환기로서, 이후 정식 외교수립과 경제협력 협정 체결로 이어지는 결정적 과도기로 간주된다.

종합

이와 같이 1972~1992 년 사이의 남조선–중화인민공화국 무역관계는 정치적 단절이라는 외형적 조건 하에서도 경제적 실리와 력사적 제도경로에 의하여 단계별로 확장되어 왔다. 각 시기의 특징은 단절이 아닌 연속적 진화 과정으로 파악되며, 그 력사적 진행은 이후의 정식 수교와 전략적 협력관계 형성의 기초를 이루었다.

4.1 동북아 정세의 재편과 외교환경 변화

1980 년대 말에 접어들며, 동북아시아 지역은 새로운 력사적 국면에 진입하게 되였다. 특히 사회주의권 내부의 구조적 변화와 미제국주의의 전략조정, 아시아 각국의 경제발전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면서 종래의 냉전체제가 동요하고, 외교적 지형 또한 급속히 변화하였다.

이러한 격변기 속에서 남조선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관계 역시 새로운 방향으로 이행하기 시작하였다. 이전까지는 제도적 단절과 적대적 인식이 관계 설정의 기본 전제로 작용하였으나, 경제적 상호의존성과 실리추구의 흐름 속에서 점차 접점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우선, 국제적 차원에서 다음과 같은 조건 변화가 뚜렷하였다:

• 소련의 쇠퇴와 동유럽 사회주의 진영의 붕괴는 중화인민공화국으로 하여금 외교전략을 조절하게 만들었으며, 이는 남조선과의 실용적 관계 설정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였다. • 중화인민공화국의 경제개방 심화는 외부자본과 기술, 시장 접근을 위한 외교 다변화를 필연적으로 요구하였으며, 남조선은 중요한 경제협력 대상으로 부상하였다. • 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는 남조선의 국제적 위상을 제고시켰고, 중화인민공화국이 기존의 대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심 외교에서 남조선을 병행 고려하는 정책전환을 유도하였다.

특히 1988 년 서울올림픽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선수단을 파견한 것은 정치적 상징성 면에서 전례 없는 사건이였으며, 이는 곧 남조선을 외교적 접촉의 대상으로 공개 인정하는 실천적 조치로 간주되였다. 동시에 중화인민공화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영향력 강화를 위해 일본, 동남아국가련합, 미국 등과의 관계를 강화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남조선을 제외한 전략 운용이 더 이상 현실적이지 않다는 판단이 보편화되였다.

남조선 내부에서도 이러한 외부환경 변화에 대한 전략적 대응이 진행되였다. 1988 년 노태우 정권이 추진한 북방정책은 중화인민공화국, 소련, 동유럽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목표로 하였으며, 이는 단순한 외교다변화가 아니라 경제적 실리 확보와 국제적 고립 탈피를 위한 필연적 선택으로 기능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정세 흐름 속에서, 남조선과 중화인민공화국은 수교 이전에도 불구하고 상호 접촉과 교류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비공식적 경로를 구축하였으며, 이는 경제, 문화, 인적교류 등 다방면에 걸쳐 진전되였다.

요컨대 1988 년을 전후하여 동북아시아 정세는 단순한 균형조정이 아니라, 기존의 대결구도 자체를 해체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였으며, 남조선–중화인민공화국 관계 역시 그러한 력사적 변화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구조로 진입하게 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4.2 남조선 – 중화인민공화국 무역 확대의 추이와 구조 변화

1988 년을 기점으로 하여 남조선과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의 쌍무무역은 양적‧질적 측면에서 일대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였다. 이 시기부터 수교가 성립되기 전까지의 기간은 제도적 외교관계가 부재한 상태에서도 무역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무역의 내용과 구조 또한 다변화‧고도화되여 갔다.

(1) 무역규모의 급속한 확대

1988 년 이후 양측의 무역 총액은 연도별로 가시적인 상승세를 기록하였다. 남조선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 상무부에서 각각 공개한 수자에 따르면, 1988 년 당시 수억 달러 수준에 불과하던 무역액은 불과 4 년 만인 1992 년에는 수십억 달러 규모에 도달하였다.

이와 같은 증가는 단순한 상업거래의 누적이라기보다는, 양국의 경제전략 변화와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른 구조적 확대의 결과로 보아야 한다. 특히 중화인민공화국은 점차 남조선을 지리적 접근성과 기술수준 면에서 가장 유리한 교역대상으로 인식하게 되였으며, 남조선 또한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과 자원을 보유한 중화인민공화국을 전략적 파트너로 간주하였다.

(2) 교역 품목의 다변화와 구조화

이 시기의 쌍무무역은 단순 소비재 중심의 초기 형태에서 탈피하여, 점차 중간재 · 기계류 · 전자부품 등 고부가가치 품목으로 이동하였다. 특히 남조선은 중화인민공화국으로부터 1 차 원료 및 농산품을 수입하는 동시에, 공업제품 · 기계장치 · 소비전자 등을 수출하였다.

이러한 교역은 기술단계의 차이를 기반으로 한 상호보완적 무역구조로 발전하였으며, 이는 이후 수교 이후에도 지속되는 경제협력의 기본 틀을 형성하였다.

• 남조선 → 중화인민공화국: 플라스틱 제품, 전기전자 부품, 섬유기계, 화학설비 등 • 중화인민공화국 → 남조선: 철광석, 석탄, 식량자원, 저가 공산품, 중간재

특히 이 시기에는 반복거래 및 계약 단위 대형화가 두드러졌으며, 일부 교역은 다국적 기업이나 현지 합작투자를 동반한 형태로 전개되였다.

(3) 무역형태의 제도화 전이

비공식·간접적 형태로 이루어지던 무역은 점차 준제도화된 구조로 이행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일부 남조선 기업의 현지 법인 설립을 사실상 허용하였고, 남조선 측은 중국 전문무역상사 및 산업단지를 통한 대중 전략을 구체화하였다. 이와 같은 흐름은 기존의 제 3 국 경유 간접거래를 점차 감소시키고, 실질적인 직접교역 단계로의 이행을 준비하는 기능을 수행하였다.

종합 평가

1988 년부터 1992 년까지의 시기는 공식 수교 이전임에도 불구하고, 남조선과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에서 경제적 실질성에 기반한 무역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기였다. 양국은 제도 없이도 시장 원리와 전략적 판단에 따라 관계를 확대하였으며, 이는 수교 이후 본격화될 무역협력의 사전 실험장이자 구조 형성기였다.

4.3 무역 확대의 외교적 의미와 수교로의 이행

1988 년 이후 남조선과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에서 급속히 확대된 경제교류는 단순한 무역의 증가 차원을 넘어, 외교적 구조와 력학관계의 재편을 촉진하는 실질적 기제로 작용하였다. 본 절에서는 당시의 무역 확대가 어떠한 외교적 함의를 가지며, 수교로의 이행에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였는지를 고찰한다.

(1) 경제관계의 외교적 전이 기능

당시 양국은 공식 외교관계가 성립되지 않은 상태였으나, 무역 및 민간교류가 정치외교적 불신을 완화하는 창구로서 기능하였다. 실제로 대규모 상사와 기업인들의 상호 방문, 산업전시회 및 상담회 참가 등을 통해 상호 인식이 변화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러한 일련의 흐름은 신뢰 축적과 상호 의존의 기반을 조성하였다.

특히, 남조선 측은 경제부문에서의 협력을 기반으로 정치적 접근을 시도하였고, 중화인민공화국은 기존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심 외교정책을 조정하여 남조선과의 다각적 교류를 실용적으로 수용하는 방향으로 정책기조를 전환하였다.

(2) ‘사실상의 관계 정상화’ 로서의 무역 확대

비록 명목상 국교가 수립되기 이전이었지만, 무역량의 확대와 품목의 고도화, 투자 확대 등은 사실상 국가 간 관계 정상화에 준하는 경제협력 수준을 구현하였다. 1991 년을 전후하여 양국은 다수의 비공식 양해각서, 투자보장 관련 문서, 사절단 교류 등을 통해 외교적 사전정지작업을 진행하였으며, 무역협정 체결 가능성도 공개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사실상의 수교 이전 상태’는 중화인민공화국 내부에서도 관영언론과 연구기관을 통하여 정당화되었으며, **“남조선은 경제협력의 파트너이며 정치적 외면이 실리추구에 역행할 수 있다”**는 류의 실용론이 확대되였다.

(3) 전략적 교류의 제도화 준비

무역 확대는 단순한 교역 증가를 넘어서서 향후 전략적 동반자관계로의 제도화 가능성을 열어주는 기초를 제공하였다. 당시 중화인민공화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내에서 복수의 외교루트를 구성하고 있었으며, 남조선을 동북아 전략의 일부로 포섭하는 과정이 본격화되였다.

• 경제적 상호보완성의 증대는 장기적 협력 필요성을 현실화시켰으며,

• 중소갈등의 해소와 미제국주의와의 관계 조정 속에서, 남조선은 협조 가능한 외교 주체로 재인식되기 시작하였다.

결과적으로 1992 년 8 월 남조선 – 중화인민공화국 간 국교 수립은 단번에 이루어진 사건이 아닌, 1980 년대 말부터의 경제협력 축적과 전략적 판단이 결합된 력사적 귀결이였다.

정리

이 절에서는 무역 확대가 정치외교적 구조 변화의 촉진자로 기능하였음을 밝히고, 그것이 수교라는 제도적 전환의 사전조건을 형성하였음을 규명하였다. 다시 말해, 경제가 외교를 앞서 견인한 사례로서, 남조선–중화인민공화국 관계의 수교과정은 경제실리와 국제정세 판단이 결합된 실천적 외교모델로 평가된다.

5.1 연구 정리 및 분석 평가

본 연구는 1972 년부터 1992 년까지 약 20 여 년에 걸친 남조선과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의 무역관계를 제도적 외교관계가 존재하지 않았던 특수한 정세 속에서 고찰하였다. 이를 통해, 형식적인 국교가 부재한 조건에서도 경제적 실리와 국제정치적 판단에 따라 양국 간의 무역이 어떻게 전개되였는지를 력사적 제도주의 시각에서 분석하였다.

(1) 력사적 경로의존성과 단계별 확대

연구의 첫째 결론은, 무역관계가 특정 시점의 정책선택에 의해 형성되고 이후 자기강화적 구조를 따라 확장되였다는 점이다. 초기에는 제 3 국을 통한 제한적 교류로 시작되였으나, 그 과정에서 축적된 신뢰와 구조화된 경로는 제도 없이도 지속 가능한 경제관계를 가능하게 하였으며, 각 단계마다 새로운 확대 가능성을 낳는 방식으로 발전하였다.

경로의존적 구조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녔다:

• 제도 없이도 유지되는 반복성 • 행위자들의 학습효과와 정책기조의 관성 • 외부 변화보다 내부 경로 유지가 더 강하게 작동

이러한 경로는 서울올림픽과 같은 국제정치 이벤트, 중화인민공화국의 개혁개방, 북방정책 등 외부적 전환점에 의해 일정 부분 수정되거나 보완되였으며, 궁극적으로 수교라는 제도화 국면으로 이어졌다.

(2) 무역 확대의 외교적 촉진 기능

둘째로, 본 연구는 무역이 단순한 경제교류를 넘어 외교 정상화를 준비하고 촉진하는 수단으로 기능하였음을 실증하였다. 정치적으로 적대관계에 있던 두 국가가 상호 인식을 조정하게 된 계기에는, 반복된 경제협력과 실리추구의 누적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는 경제가 외교를 추동하는 대표적 사례로, 비공식 교류가 정치적 장벽을 허물고 외교적 제도화를 견인하는 력사적 과정을 입증하였다.

(3) 이론적 적용과 방법론 평가

셋째로, 력사적 제도주의에 기초한 본 연구의 접근방식은 동북아 지역 외교 및 경제관계의 분석에 유효한 틀로 작용하였다. 특히 경로의존성 및 경로전환 개념을 통해 과거 선택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어떤 조건에서 제도적 전환이 발생하는지를 구조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문헌자료, 외교문건, 통계수자, 회고록 등 다양한 사료에 기초한 실증분석은 이론적 논의를 현실 사례에 정합적으로 적용하는 데 기여하였다.

총괄 평가

결국, 본 연구는 남조선–중화인민공화국 사이의 무역관계가 단순히 경제적 수요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 정세적 판단과 전략적 선택, 그리고 력사적 경로에 따라 형성되고 제도화된 과정이였음을 체계적으로 밝힌 데 그 학술적 의의가 있다.

이러한 분석은 향후 동북아 정세 변화와 신흥국가 간 경제외교를 고찰하는 데 있어서도 유용한 연구기반으로 작용할 것이다.

5.2 연구의 한계와 향후 과제

본 연구는 남조선과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의 수교 이전 무역관계를 력사적 제도주의 이론에 기반하여 구조적으로 고찰하였다. 비록 일정한 학술적 성과를 도출하였으나, 동시에 몇 가지 제약 요인과 분석적 한계도 존재하였으며, 이에 대한 인식은 향후 연구의 보완 방향을 제시해준다.

(1) 자료 접근의 한계성

첫째로, 수교 이전 시기의 무역 관련 자료는 구조적으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중화인민공화국 측의 공식통계나 정책문건은 당시 정치적 특성상 공개가 극히 제한되였으며, 대부분 간접적 경로를 통한 사료나 제 3 국 자료에 의존해야 했다. 이에 따라 수자 기반의 정밀한 실증분석에는 일정한 제약이 존재하였다.

또한 남조선 측 자료 역시 공식기록으로부터 배제된 민간 차원의 교류는 통계상으로 누락되거나 파편적으로 기록되어 있어, 정합적 재구성에는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였다.

(2) 분석범위의 시간적 제약

본 연구는 1972 년부터 1992 년까지의 20 년 구간을 집중적으로 조명하였으나, 이 시기 외에도 그 전단계(19532000 년대 초기)에 이르는 연속적 변화 양상에 대한 분석은 포함되지 못하였다. 이는 분석의 초점 설정상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나, 보다 력사적 심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장기 시계열 분석이 추가로 수행될 필요가 있다.

(3) 이론 적용의 보완 필요성

본 연구는 경로의존성과 경로전환이라는 중간범위이론을 바탕으로 분석을 진행하였으나, 일부 국면에서는 다른 분석틀과의 융합적 접근이 보다 풍부한 설명력을 제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예컨대 국제정치이론(현실주의, 자유주의)이나 복합상호의존모델 등과의 비교분석이 함께 이루어졌다면 정세 변화의 외생적 요인을 보다 면밀히 규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향후 연구과제 제안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후속적 탐구가 제안된다:

  1. 보다 광범위한 문헌 및 비공식 자료 확보 → 사적기업 문건, 인터뷰, 구술사 등 다층적 사료수집을 통한 실증분석 강화
  2. 장기적 시계열에 따른 구조변동 분석 → 1950 년대 후반부터 2000 년대까지 이어지는 전체 한중 무역관계 구조 변화 고찰
  3. 융합적 이론모델의 적용 확대 → 제도주의, 세계체제이론, 지역안보론 등을 통합한 분석을 통해 다양한 변수 간 력학관계 규명 맺음말

본 연구는 수교 이전의 비공식적 무역관계에 대한 최초의 구조적 고찰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지며, 향후 보다 다층적이고 주체적인 연구들이 이어져야만 동북아 국제관계와 경제협력의 력사적 경로를 정확히 규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남조선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관계사는 단순한 수치나 사건이 아니라 구조와 경로의 흐름으로 해석되어야 하며, 이에 대한 학문적 탐색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야 할 필수적 과제이다.

조선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주체112(20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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