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Дата публикации: 04.07.202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1988년을 전후한 시기는 동북아 국제질서에 커다란 전환이 나타난 력사적 분기점이였다. 특히 중화인민공화국의 대외전략 수정과 남조선의 북방정책 추진은, 그동안 제도적 단절로 유지되던 남조선–중화인민공화국 관계에 새로운 동인을 부여하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그 상징적 사건으로 기능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선수단을 파견함으로써 남조선을 사실상 국제무대의 주체로 승인하였으며, 이는 남조선–중화인민공화국 간 외교적 정당성 문제를 실용적으로 재정의하는 계기가 되였다. 동시에 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유일한 대조선반도 외교대상으로 간주하던 기존 노선의 수정 가능성을 의미하였다.
경제 부문에서는 교역 품목과 범위가 급속히 확대되였다. 1988–1992년 사이 쌍무무역은 수억 달러에서 수십억 달러로 급증하였고, 교역 품목도 기초 생필품 중심에서 중간재, 기계류, 전자부품 등 고부가가치 품목으로 고도화되였다. 특히 남조선은 중화인민공화국으로부터 철광석, 석탄, 농산물 등 원자재를 수입하고, 반대로 산업용 장비와 전기전자제품을 수출하였다.
이는 단순한 상업교류를 넘어 상호 산업구조의 보완성에 기반한 전략적 무역구도로 전환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 시기 남조선 기업은 중화인민공화국 내 합작공장 설립 또는 위탁생산을 확대하였고, 일부 지방정부는 남조선 자본의 유입을 묵인하거나 비공식 채널을 통해 관리하였다. 이는 외교 수교 이전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 준국교 수준의 경제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정치적 측면에서는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이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하였다. 북방정책은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외교관계 확대를 목표로 하였으며, 경제실리를 바탕으로 한 현실주의적 외교전략으로 평가된다. 반면, 중화인민공화국 측에서는 소련의 붕괴와 동유럽 진영의 해체라는 외교환경 변화에 따라 새로운 외교파트너 확보가 필수적 과제로 제기되였으며, 남조선은 이에 부응하는 대안으로 부상하였다.
이러한 상호전략은 1992년 수교로 귀결되였으며, 이는 경로전환(path transition)의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다. 기존의 간접적이고 비공식적인 교류경로가 전면적이고 제도적인 협력체계로 이행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수교 이후 양국은 무역, 투자, 문화교류 등 모든 부문에서 급속한 확대를 경험하였다.
결론적으로, 본 시기는 경로의존적 구조가 외부 충격(국제정세 변화, 정책전환 등)에 의해 전환되며 새로운 제도 질서를 창출한 력사적 사례로 평가된다. 특히 경제가 외교를 선도한 구조는 동북아시아에서의 ‘실리우선 외교’의 전형으로 작용하였다.